작년에서야 프로그래밍을 통한 현실의 문제 해결이 재밌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 동기들과 다른 길을 택하고 혼자 무엇을 공부할지부터 고민했다. 충분한 지식이나 조언 없이 세운 목표는 항상 흔들렸다. 공부는 때로는 비효율적이었고 때로는 시간 낭비였다. 교내에서 졸업사진을 찍는 무리와 결정나는 동기들의 진로는 끊임없이 내 결정과 계획을 의심하게 했다. 불안 가득한 마음으로 우아한테크코스에 지원해 오랜 선발 기간을 거쳤고, 연말에야 운 좋게 합격 통지를 받을 수 있었다. 기쁘기도 기뻤지만 '졸업 후 완전 백수가 되는 건 아니구나...' 하고 안심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모디라는 이름을 가지고 잠실 출퇴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다. 학생의 신분으로 수많은 직장인과 지옥철에서 몸을 맞대고 있노라면 ‘내가 나쁘지 않게 사회적 성장을 하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앞으로 아주 오랜 기간 이렇게 출퇴근하겠구나’ 하는 걱정도 된다. 아직도 출입증을 목에 걸면 과도기적인 나의 위치에 어색함이 들어 슬쩍 카드만 빼 지갑에 넣어두곤 한다. 그래도 날이 따뜻해지며 교육장에서의 하루도 많이 익숙해졌다. 이제 하루의 시작은 도서관 창문에서 등교하는 학우들 구경에서 각 레벨 동안 함께 하는 데일리 조와의 미팅으로 바뀌었다. 데일리 미팅을 통해 간단히 서로의 어제가 어떠했고 오늘이 어떨지 공유하고 게임을 하며 웃기도 한다. 그 이후는? 명확하게 정해진 건 없다.

명확하게 정해진 게 없다고?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충격적이다. 따로 강의가 있는 게 아니라면 퇴근 시간까지 정말 시간을 마음대로 활용해도 된다. 주어진 과제를 하다 지겨우면 커피를 한 잔 사러 나가며 다른 크루들이랑 잡담해도 되고, 책을 읽어도 되고, 조금 자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 공부도 아무 데서나 해도 된다. 첫날은 다들 강의실에 옹기종기 앉아서 수업을 들었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바로 둘째 날부터는 다들 카페 같은 로비에서, 아늑한 페어룸에서, 시티뷰를 즐기며 할 일을 하더라. 나는 항상 강의실 앞쪽에 종일 앉아 공부하는데 이런 걸 보면 여전히 나는 재래식 교육에 익숙한 재래식 인간인가보다.

이런 자유로운 시스템이 유지되는 이유는 목적과 관심사가 일치하는 사람들을 모아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크루들이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혹시 이거는 어떻게 구현했어요?’ 하고 물어보고 자신의 구현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하고 토론한다. 학교 동기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 자주 볼수록 할 얘기가 줄어들었지만, 여기서는 다 함께 어떤 내용을 새로 배웠는지, 어떤 피드백을 받았는지 등 끊임없는 지식과 의견이 왕래한다. 레벨 1을 시작하며 첫날 새로운 조원들과 점심을 먹으러 나갔었다. 칼국수를 시켜놓고 기다리며 내 옆의 베베와 홍실이 한참을 구조 설계에 관해서 이야기했고 듣다가 웃음이 살짝 나왔다. 베베가 ‘아니 모디, 왜 갑자기 웃어요?’라고 물었다.
‘밥 기다리면서 이거 계속 고민하는 게 재밌잖아요~’

과연 나는 10개월간 얼마나 성장을 하게 될까? 며칠 전 데일리 미팅을 하면서 얘기가 나왔다. 대학에서 프로그래밍을 다양하게 했지만 정작 자바는 작년에, 클린 코드가 무엇인지 관심을 가진 것은 반년도 채 되지 않았다. 수많은 크루들과 얘기하고 리뷰어들의 리뷰를 받으며 객체 지향적 설계에 대해 고민해본 것은 두 달이 안 되었다. 여전히 나는 불안하다. 잘하는 크루들은 너무 많고 두꺼운 책을 열심히 넘겨도 여전히 첫 페이지를 읽는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전에는 어떤 책을 펼쳐야 할지 몰랐다면 이제는 천천히 페이지를 읽어나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오롯이 프로그래밍에 집중할 수 있는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과 지금의 열 배를 성장할 생각을 하니 자신감이 생기고 내일이 기대된다.

아, 마침 리뷰가 도착했으니 코드를 수정하러 가야겠다. 안녕.